일상이야기

모두가 소시오패스

세널리 2019. 9. 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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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별 따기 라는 직장 구하기, 그런데 퇴사하는 이유는?

최근 ICT(정보통신기술) 업체에서 모바일 증강현실 앱을 기획하는 부서에서 일했던 젊은 인턴사원을 만났다. 그는 최근 수습기간이 끝났고, 회사측과 근로자간의 상호합의에 의해 계속 일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데 젊은 친구가 왜 반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까? 임금에 비해 지나친 노동강도가 문제였을까? 하지만 그가 내게 말한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회사의 대표가 지닌 인격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지나친 폭언, 분노조절장애를 연상케 하는 고함지르기, 직원들 망신주기, 직원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기 등등의 사례를 내게 나열했다. 그는 그런 모욕적 대우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 대표의 경영방법인 것 같아요. 무슨 트집이라도 잡아서 일단 직원들을 깔아뭉개놓은 다음 일을 말도 안되게 몰아주는 거죠. 그렇게 해서 못 버티는 직원은 능력 없다는 사유를 들어 해고하면 그만이고. 그런 식으로 사업을 해왔던 것이겠죠.”

 

모두가 아는데도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믿는 사람들

사회경험이 짧은 젊은 인턴사원이었던 그조차 대표의 속마음과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대표가 사원들이 자신의 속셈을 모른다고 혼자 착각하며 여전히 회의에서 소리를 지르고, 상대를 모욕하는 언사로 화를 내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죽자고 덤벼들어 사원들과 싸움을 하려 든다는 것이다. 사원들 입장에서는 근로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 인턴사원이 회사를 탈출해 자기 살 길을 강구하는 것은 옳은 선택일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소시오패스 CEO에 의해 경영되기 때문이다.

젊은 인턴사원의 말을 들으면, 그 회사 대표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짙은 사람이다. 소시오패스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이 있지만, 정신 장애로 규정하는 심각한 규정을 피하고 일반적으로 소시오패스를 단순하게 정의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목표나 목적을 위해 타인을 도구화하고 타인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기본 윤리의식이 마비된 사람, 자신을 과시하며 타인의 곤경이나 곤란에 대한 공감능력이 심각히 결여된 사람의 정신 상태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소시오패스는 회사의 CEO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실리콘밸리의 CEO들은 소시오패스’라거나 ‘직장에서 성공한 유형들은 모두 소시오패스’ 등의 신문기사, 보고서, 책들이 시중에 돌아다닐 정도다. 그 내용이 얼마나 엄격한 분석인지 여부는 따져야겠지만, 대체로 시중의 반응이 그에 대해 공감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현실에 부합하는 얘기일 것이다.

직원들에 대한 신뢰는 고사하고 직원들을 의심하고, 끊임없이 이간질시키고, 직원들을 모욕하며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직원들을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으며, 타인의 곤란이나 감정 따위는 개의치 않는 충동적 사업변경과 업무지시를 반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행위들을 인력 관리의 노하우라고 믿는 CEO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퇴사한 젊은 인턴사원인 그는 대체 어느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이 사회가 진짜 걱정해야 할 부분이다. 경영환경은 바뀌었는데, 경영자들은 낡은 소시오패스 기법을 관리의 노하우라 믿으며 여전히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게 진짜 문제다.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직원과의 전투 승리자는 무조건 CEO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CEO가 회사 내의 전투에서 승리해 의기양양해도 회사를 둘러싼 경영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도 비즈니스가 잘 풀린다면, 그건 그저 한 때의 운에 불과하다.

자, 정신을 차리자.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건 CEO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 필자 채희철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강릉에서 자랐으며,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고 1997년 계간 사이버문학지 <버전업> 여름호에 장편소설 <풀밭 위의 식사>를 게재하며 작가로 데뷔, 인문교양서 <눈 밖에 난 철학, 귀 속에 든 철학> 등의 저서가 있다.  1969년 생인 그는 현재 아저씨가 되어 강릉의 한 바닷가에 살고 있다.

 

채희철  kikib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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